모호함의 언저리

우리는 젊고 또 사랑하니까

말씀자료

티스토리를 시작하며

제희 2025. 9. 30. 02:35

사랑하세요? 그럼 의심하지 마세요. 의심하세요? 그럼 사랑하지 마세요.

 
누군가 말하기를, 책은 '기록하는 자'의 산물이라 했다. 책과 가까이 하는 일을 평생의 업(業)으로 삼으리라 다짐했으면서도, 정작 나는 나에 대해 기록하는 일을 소홀히하지 않았나 싶다. 문득, 무엇이든 좋으니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결심을 했다. 그동안 항상 생각만 해왔던 티스토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누가 와서 들여다 보긴 할까 싶지마는. 뭐, 아무렴 어떤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마음껏 풀어놓으면 그만이다.
 
간간히 읽은 책이며, 좋아하는 노래며, 온갖 잡다한 생각들을 떠오르는 대로 이 공간에 적어볼까 한다. 여전히 티스토리는 글을 쓰기에 딱히 좋은 플랫폼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세상은 순식간에 나아지지 않아서 여전히 변방으로 밀려나는 아이들을 만나곤 합니다. 경계 위에 서 있는 아이들은 오늘도 불안을 견디며 걸음을 내딛습니다. 함께 살아남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면 그 많은 공부와 배움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요?

어설픈 위로도, 섣부른 희망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 나는 숨죽여 소설을 씁니다. 너는 괜찮아? 짧은 인사를 남기기로 합니다. 거기 있음을 아는 것이 나의 시작입니다.

진형민, <곰의 부탁>, 191p

 
나름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곰의 부탁>에 나오는 '작가의 말'의 한 대목이다. 흔하디 흔한 청소년 문학 같지만, 꽤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쨌든 그렇다.
 
이 책은 과제를 준비하며 알게 된 책이었다. 다 읽었기 때문에 책을 덮으려던 찰나에 '작가의 말' 속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단락을 읽고, 조용하고 묵직한 울림을 느껴 잠시 전율에 휩싸였었던 기억이 난다.
 
변방으로 밀려난 채 오늘도 불안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 앞에, 어설픈 위로도 섣부른 희망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기에, 그저 '거기 있음'을 아는 것. 그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곁에서 조용히 "너는 괜찮아"라며 짧은 인사를 남기는 것. 그들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증명하는 것.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더 나은 세상을 항한 '연대'를 놓지 않는 것. 이러한 소리 없는 다정함이 여전히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생각해 보면, 참 별거 아닌 일이고, 제대로 된 위로도 희망도 아닐 수도 있다. 혐오와 배제, 그리고 불안이 넘쳐나는 시대를 넘어서고자 '말'과 '글'을 통해 서로 '연결'하고 '연대'한다는 것은 그래도 참 멋있는 일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이 지겨워서 때로는 지치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내민 그리 따뜻하지 않을 수도 있는  손길에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드니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말'과 '글'이 가진 힘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기 있음을 아는 것'이 그 출발점이 아닐까. 세상이 순식간에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말'을 하고 '글'을 쓴다.

나는 나름 나의 자리를 지키며 나만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 방식이 나에게는 '말'과 '글'이었다.
세상은 비록 나에게 시련만을 가져다주었지만, '말'과 '글'은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으니까.
 
그래서 '거기 있음을 아는 것'은 나에게도 있어 시작이기도 하다. 내가 건네는 작은 다정함이 그대에게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티스토리를 열게 되었다.
 
 

 
아무튼, 나름 하고 싶었던 말은 다 적은 것 같다. 이 장면 너머엔 어느 계절처럼 환한 빛이길 바라며, CRAVITY의 <낯섦>이라는 곡으로 글을 마쳐 본다.
 
그러면, 앞으로 티스토리에서 자주 만납시다! 이만, 총총.